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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자신이 지닌 무기와 비교도 안 될 만큼 우월한 무력적 방법에 의해 점령당한 쪽의 입장에서 보면, 민중의 반응이 꼭 비폭력적일 수만은 없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테러리즘이 격분을 표출하는 한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 격분은 부정적 표현이다. '도에 넘치게 분노'해서는 안 되며, 어쨌든 희망을 가져야 한다. 격분이란 희망을 부정하는 행위다.
 
샤르트르는 1947년에 이렇게 썼다.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 폭력이든, 폭력이란 일단 실패라는 사실을 수긍한다. 그러나 이 실패는 피할 수 없는 실패다. 왜냐하면 우리는 폭력의 세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폭력에 의거하는 행위 자체가 자칫 폭력을 영속화할 수 있음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폭력을 멈추게 하는 유일한 수단 또한 폭력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샤르트르는 1980년 3월, 임종을 3주 앞두고 이런 말을 했다. "끔찍한 지금의 세계가 기나긴 역사의 발전 속에서 보면 그저 한순간일 뿐인 이유를, 숱한 혁명과 봉기를 이끈 주도적 힘의 하나는 언제나 희망이었음을, 내가 미래를 생각하면서 여전히 그래도 미래는 희망이라고 보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레지스탕스에 동참한 형제자매들의 희생과 파시즘의 야만에 맞선 여러 나라의 단결 덕분에 나치즘은 궤멸되었다. 그러나 그 위협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불의에 맞서는 우리의 분노는 여전히 그대로 살아 있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오로지 대량 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만을 앞날의 지평으로 제시하는 대중 언론매체에 맞서는 진정한 평화적 봉기"를
 
분노할 일을 넘겨버리지 말라. 찾아서 분노하고 참여하여, 반죽을 부풀리는 누룩이 되라.
 
어느 누구라도 인간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거든, 부디 그의 편을 들어주고, 그가 그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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