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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기득권을 쥘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버린 지식인을 열광한다. 심지어 자신이 지식인이라는 자의식마저 갖지 않은 사람이라면 감성적 연대마저도 갖는다. 한 시대에 강하게 자신을 역사에 남긴 사람의 산 집과 죽은 집이 같이 있는 그 장소. 정치적 관점을 떠나 한 사람의 생이 기록된 봉하마을을 건축가의 눈으로 기록해본다.


VMSPACE.COM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1. 11. 1)
http://www.vmspace.com/2008_re/kor/sub_emagazine_view.asp?category=architecture&idx=11495&pageNum=1


더불어 산 집을 지은 건축가도 얼마전 뒤따르듯 가셨다. 건축가인 나에게는 다시 한번 죽음의 이미지로 기억되는 장소에 대한 순례라고 할 것이다.




가을의 봉하마을


봉하마을은 작은 마을이다. 가을에 찾아간 봉하마을은 온통 노란색의 물결로 덮여 있다. 마을 곳곳에 떨어진 은행나무 잎과 추수를 앞두고 있는 논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징처럼 펼쳐져 있다. 고 정기용 건축가가 설계한 사저와 노무현 재단, 경호원 숙소, 직원들의 사저 모두 적삼목과 흙다짐벽, 벽돌들이 적갈색과 노란색으로 통일되어, 가을과 함께 온 마을을 감싸고 있다. 고 정기용 씨는 설계당시에 이런 모습을 눈에 그렸을지에 대한 호기심이 봉하마을의 첫인상이다.



정면에 보이는 사저 아래는 생가, 사저너머로 보이는 바위가 그 '부엉이 바위', 왼편 작은 건물들은 경호원 숙소로 이루어져 있다.




사저

사저는 평지보다 약간 높게 지어져 밖에선 언뜻언뜻 보여 많은 걸 관찰하기는 어렵다. 들어가보진 않아도 어느정도 관찰이 가능할거란 생각은 봉하마을에 있는 경호원들을 보고 순진한 기대란걸 깨달았다. 사저는 소박하며, 재료는 겸손하다. 

생가, 사저, 부엉이 바위. 건축비용 2억 2천만원은 경호시설에 쓰였고, 사저는 사비로 지어졌다.


고 정기용씨가 고 노무현 대통령과 사저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남긴 노트를 인용한다.
 
 
"봉화산과 뒷산이 어울어지고
드러나지 않고
보통 사람들이 살고자 하는 전원 농촌생활
귀향운동의 근거지
느리게 살고 작게 생산하는 적게 쓰는 삶
그렇게 시간을 남겨서 여유 있게 살고
지역에 봉사하는 삶

무엇보다도 실용적이고
담장은 집과 어우러지고
첨단과학과 친환경적 수법이 조화를 이루며
(태양열, 지열, 환기...)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제성이 있게

아름답고
개방과 폐쇄
자연과 친하게, 차단과 동화(계절의 변화에 따라)
집 둘레는 잔디 마당보다는 Wood Deck"

출처 : 2006년 4월 27일 설계노트, 정기용 작품집



"대통령은 퇴임 후 고향에서 편한 여생을 보내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사저를 베이스캠프 삼아 봉하마을과 주변자연을 새롭게 살려내 재임 시 밀린 숙제 같은 농촌의 균형 발전이 어떻게 가능한지 현장에서 몸 바쳐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제안했다. 농촌에서 일하며 지내시려면 수시로 농촌의 기후와 접해야 하고, 그러려면 옛날 농촌집의 배치처럼 채를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그렇게 해서 중정을 중심으로 경호동과 사무동, 사랑채와 안채 이렇게 네 동으로 집을 배열했다. 그러나 원래는 두 채가 연이어 놓이면 집이 너무 커 보일 수 있어서 경호동과 사저를 좀 떨어지게 배치했던 것인데,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여러 해 가족같이 지내야 할 텐데, 서로 붙어 있는 게 비서들이나 경호실 직원들에게 편리할 겁니다." 그렇게 해서 두 채가 한 채처럼 나란히 서게 된 것이다."
 
출처 : 정기용 작품집




출처 : 정기용 작품집




건축가 고 정기용 (1945 - 2011)




사후의 집, 묘역 (국가보존묘지 1호)


사저 맞은편엔 묘역이 있다. 본인의 뜻을 따르자면 조그만 비석으로 묘역이 완성되어야 했다. 하지만 비석이 가질 의미가 작지 않고, 추모제와 같은 행사를 위해서는 필요한 공간이 필요했기에, 지금의 위치와 크기가 불가피했다고 한다. (참조 : 노무현의 무덤 스스로 추방된 자들을 위한 풍경, 승효상)

산 자와 죽은 자의 물리적 거리는, 그 사회가 어떤 사회로 성장해왔느냐에 따라 나뉜다. 농경사회에서 죽은 자가 평지를 가지면 산 자가 먹고 살 땅이 없어지기 때문에, 죽은 자는 산으로 올라갔다. 그래서 산은 신성시되어 왔다. 농경사회를 벗어났더라도 풍습은 좀체 바뀌지 않는다. 묘역의 위치가 이러한 관념적 풍습을 토대로 결정되진 않은 것은, 평지에 있는 지금의 집은 처음 봉하마을로 내려와 다짐했던 고인의 마음을 품고 있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삼각형의 대지는 시각적 착시를 일으킨다. 투시도적 소실점을 제거해버린 장면은 보는 사람에게 익숙하지 않기에 시각적 불안감을 부른다. 시각적 불안감은 건축적으로 볼 때 주로 정치적 건축에서 흔히 사용하는 어휘이다. 파르테논, 국회의사당에 사용된 휴먼 스케일을 넘어선 거대한 기둥, 자연의 사물들이 모두 대칭인 것을 이용하여 거대한 대칭으로 지어지는 건축물들. 자연에서 느낄 수 없는 이런 시각적 충격으로 인한 공간적 경이는 장소를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다.




묘비로 곧게 뻗은 길은 소실점의 상실로 혼란을 겪고 있는 인지능력에게 강한 소실점으로 중심을 각인시킨다. 혼돈으로 중심을 도드라지게 하고 있다. 건축가 승효상 씨가 원한 이러한 건축적 착시는, 그러나 사실 생각보다 강렬하진 않다. 오히려, 바닥 블럭들에 새겨진 글귀들이 묘역의 아우라를 강하게 규정짓는다. 








죽은 자에게 가는 길을 '걸어가는 것'은 그 자체가 종교적 의식과 같다. 서거 당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새겨놓은 길을 읽으면서 걸어간다. 일직선으로 묘비까지 걸어갈 수 있지만, 대부분은 글을 보며 지그재그로 나아있는 길을 따라 걷는다. 급하지 않게, 하나씩 하나씩 읽다가 묘비까지 도착하면 가슴이 찡하다. 시민의 참여로 만들어진 길, 건축가 스스로가 얘기한 '감성적 지형sentimental topography'은 의도한 것보다 훨씬 강렬하다.




아쉬운 코르텐 스틸corten steel

"처음에는 검정색이지만 표면이 부식 되면서 붉은색으로 변하다가 최종적으로는 암적색으로 정착된다. 매일 변하는 모습이 다르고, 햇빛과 그늘에 따라 달리 보이며, 비 오는 날에는 짙은 수묵의 색채를 보인다. 그 변화는 과정이 세월과 함께 하여 기억을 담기에는 이만한 재료가 없다. 그 성질 때문에 이 재료의 벽체는 긴장을 불현듯 조성한다. 많은 기념 시설에 이 재료를 쓰는 까닭이다." 승효상

사실 코르텐 스틸 재료는 건축가 승효상 씨가 자주 쓰곤 한다. 장충동 '웰콤시티'는 오피스 건물임에도 이 재료를 사용하여, 위의 설명과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웰콤시티, 승효상




세월을 반영하는 재료라는 멋있는 수식에도 불구하고, 표면이 부식된 강철은 옷을 버리기 때문에 가까이 접근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는, 실제로 사용하긴 어려운 재료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재료를 좋아하지 않지만, 묘역을 지키는 벽으로서는 훌륭한 선택으로 보인다. 부식이 주는 세련되지 않은 모습이 좋다.


 
 
하지만, 묘역을 감싸고 있는 코르텐 스틸은 암적색이 되지 않는한 감성적으로 불쾌한 색채를 띄고 있다. 매우 불편했다. 묘비를 받치고 있는 재료가 바위보다 도드라지는 모습이, 건축가의 욕심처럼 비춰졌기 때문이다. 글씨도 잘 읽히지 못할 정도로 부식이 일어난 모습을 보니, 세월이라는 이름에 너무 많은 것을 떠넘긴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묘소와 가까운 부엉이 바위. 생가, 사저, 부엉이 바위, 묘역이 한눈에 들어오는 봉하마을은 개인의 인생사를 고스란히 펼쳐놓아, 강렬한 공간적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이 곳에선 누구도 뛰거나, 크게 웃지 않았다.




감성을 폭발시키는 '노무현 대통령 추모의 집'




묘역이 거대한 공간적 기운을 가지고 감성을 감싸고 있다면, 추모의 집은 직접적으로 감성을 자극한다. 서거 후 고 정기용 씨가 설계한 이 곳은 저렴한 공사비를 감안해 단촐하게 지어졌지만, 결코 다른 곳보다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실내는 생전의 기록물들을 연대기로 전시하여, 전시공간을 따라 걷다보면 고 노무현 대통령의 일생에 맞춰 감정의 기복을 이끌어낸다.






봉하마을이 가진 가장 큰 힘, '자발적 참여'가 이 추모의 집에서도 입면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노란색 벽면을 만든 사람들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글에 담긴 감정이 전달되어 복잡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봉하마을은 정치적 입장과는 무관하게 다녀올만하다는 말을 들었다. 다녀오고난 후 그 말에 수긍이 간다. 대통령이 태어난 마을로 유명해진 후, 대통령이 떠난 곳으로, 지금은 성소가 된 이 장소. 그를 사랑하는 이들에겐 회상과 후회를 남겨주며, 그를 잘 모르던 이들에겐 많은 걸 포기한 지식인의 삶을 안내하는 곳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특히 건축을 업으로 하는 이들에겐 방문해봐야 할 곳이라고 생각한다. 건축이 감성과 기억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장소를 배울 수 있으며, 한 사람의 일대기가 물리적 형태로 빚어진 장소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끝



몇 장의 사진





봉하마을의 전경




생가와 사저 사이엔 노무현 재단이 있다. 특이하지도, 비루하지 않게 통일성과 아름다움이 있는 고 정기용 씨가 같이 설계한 건축물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사저 앞 경비 초소. 작은 건물에도 재료의 통일성과 비례감은 심어져 있다.




"전통적 공공건축에서 방화수로 쓰기 위해 입구 부분에 수반을 설치하는 관습을 고려했다." 
(출처 : 노무현의 무덤 스스로 추방된 자들을 위한 풍경, 승효상)












부엉이 바위














VMSPACE.COM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1. 11. 1)
http://www.vmspace.com/2008_re/kor/sub_emagazine_view.asp?category=architecture&idx=11495&pageNum=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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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올 2011/11/14 19:48 address edit & delete reply

    마침 화창한 날씨에 선명하게 드러난 모습을 차근차근 짚어주셨네요. 그 사람과 살아온 삶을 담아낸 공간을 그려내는 건 참으로 어렵지만 오래 남을 멋진 일이군요. 2009년 5월 24일에 처음 갔을 때 하늘 뚫린듯 퍼붓는 비에 그렇게 아플 수 없는 곳이었는데 다듬어진 모습을 보니 다시 가보고싶어요.

    • 벙어리새 2011/11/14 22:44 address edit & delete

      그래도 감정은 날씨와 상관없이 흐르더라구요. 추모의 집에선 좀 먹먹해져서 한동안 말을 하지 못하겠던 기억이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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